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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의 중심적 진원지 전북 / 새전북신문 / 새로 쓰는 동학기행 3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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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출처: 새전북신문(http://sjbnews.com/news/news.php?number=751516)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적 진원지 전북 

채길순의 ‘새로 쓰는 동학기행’ 완결편인 제3권으로, 전남북도와 제주도 지역 동학농민혁명사와 관련 사적과 역사 소개 


기사 작성:  이종근 -2022년 07월 18일 08시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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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전역의 동학 사적지를 답사, 조사해 온 채길순의 ‘새로 쓰는 동학기행(모시는사람들)’ 완결편인 제3권으로, 전남북도와 제주도 지역 동학농민혁명사와 관련 사적과 역사를 소개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 근대사의 결정적인 변곡점인 동학농민혁명을 전국의 각 도와 군 단위로 조명한다는 데 있다. 사건이나 인물 중심의 접근이 대부분인 동학농민혁명사 연구에 새로운 관점과 안목을 제공함으로써 더 입체적인 역사상을 구성해 내는 것이다. 이 작업을 통해 동학농민혁명이 전국적인 단위에서 민중 전체의 참여로 전개된 사건임을 드러내고, 각 지역별 전개 과정의 특징 또한 훨씬 객관적으로 드러내 준다.

제3권은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적 진원지였던 전라남북도를 주로 다루고 있어 그 내용이 더욱 풍부하다. 이 책은 한국근대사의 출발점이자 세계적인 민중 주체 혁명인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의 의미, 그 위상과 가치를 가늠하고 판별하는 가늠자와 좌표 또는 지도 역할을 해준다.

‘전북도에 동학이 유입된 것은 창도주(수운 최제우) 재세 시기(1864년 이전)부터라는 일부의 주장도 있으나 대략 최시형의 포덕을 기점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앞의 주장은 1860년대 창도주 최제우의 남원 지역 행적 때문인데, 그가 남원 교룡산성 은적암에 도피하여 경전을 집필할 당시 금산 남원지역에 동학이 포교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입도했던 도인의 행적은 수운 순도 이후 멸절되다시피 했고, 본격적인 동학 포교는 1880년대 말 동학 2세 교주 최시형의 전라도 잠행 포덕으로 동학이 널리 퍼졌다고 볼 수 있다. 특히 1892년 공주·삼례 취회, 1893년 광화문 상소, 보은 취회 등 교조신원운동을 거치면서 동학교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황토재 전투는 동학농민군이 감영군을 대상으로 전투를 벌여서 거둔 최초의 값진 승리였다. 이후 동학농민군은 흥덕, 고창, 무장, 영광, 함평 등 전라도 지역을 차례로 점령하여 군세 확장에 나섰다. 황토재 전투 승리로 동학농민군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고, 전라도 지역 세력 규합에 성공한 동학농민군은 4월 23일 장성 황룡 전투에서 초토사 홍계훈이 이끄는 경군을 맞아 대승을 거두고 여세를 몰아 파죽지세로 전주성을 함락하게 된다'

전북 관련 내용은 계속된다.

'고창 재봉기란 1898년과 1899년 두 차례에 걸쳐 전개된 농민봉기를 뜻한다. 1898년 흥덕 농민봉기는 흥덕 군수의 탐학에 저항한 사건이며, 1899년 봉기는 1898년 때 주동 인물인 이화삼을 구출할 목적으로 일어났다. 농민 봉기 수습 과정에서 당사자인 흥덕 군수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이화삼은 고창옥에 갇혔다가 광주옥으로 이감된다는 소문을 접하고 영학당을 주축으로 봉기했다. 동학농민혁명 때와 마찬가지로 고부 말목 장터에서 기포하여 고창 관아를 습격했다. 그러나 고창 관아는 방비를 한데다 때마침 몰아친 폭우로 패퇴하고 말았다. 이들 중에 김장일(金長一), 양선태(梁先太), 오재봉(吳在奉)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1899년 재봉기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그해 9월 광주옥에 수감됐다.

다음도 전북 관련 장면이다.

'일본군의 참전으로 패배를 거듭한 동학농민군은 살아남기 위해 무리를 해산시키고 피신해야 했다. 지역 유생을 중심으로 결성된 민보군 토벌대가 마을 마을을 지키고 있어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동학농민군은 관-일본-민보군에 붙잡혀 희생되거나 인근의 산속으로, 혹은 강진의 대구 칠량을 거쳐 해남으로, 보성 회령으로, 또는 회진 등 남쪽 바닷가로 숨어들었다가 배를 타고 섬으로 숨어들어 생명을 보존해야 했다. 당시 일본군이 전라도 각 군현의 수령들로부터 동학농민군 처단 결과를 보고받았는데, “해남 250명, 강진 320명, 장흥 320명, 나주 230명, 그리고 함평, 무안, 영암, 광주, 능주, 담양, 장성, 영광, 순창, 운봉, 무장 등에서는 30~50명씩을 처단했다”고 했으니 당시 희생자의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이 책의 총론은 전라북도 동학의 흐름, 임피 군산 지역 동학농민군의 활동이 기록됐다. 호남 지역 동학 포교의 교두보 익산, 완주 동학혁명의 시작과 대둔산 마지막 항쟁, 진안 주변 지역으로 이동하여 투쟁 활동 전개, 무주 동학농민군이 무주 관아와 용담 현아 점령, 김제 금구 원평의 투쟁활동과 김덕명, 전주 전라도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지, 부안 백산 대회로 본격적인 동학농민혁명 전개, 정읍 동학농민혁명의 발원지, 임실 동남부 지역 동학 포교의 거점, 장수 황내문이 장수 관아 점령, 고창 무장에서 동학농민혁명의 횃불을 올리다. 순창 막강한 동학 교세와 전봉준의 피체지, 남원 동학의 성지, 전라좌도 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지 등으로 소개된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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