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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일에 '반일'과 '혐한'을 생각하다 / 프레시안 / 종교로 평화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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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출처: 프레시안(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082915075873131)

프레시안

            

경술국치일에 '반일'과 '혐한'을 생각하다

[프레시안 books] <종교로 평화 만들기>

            
            

반가운 책 한 권이 출판되었다. <종교로 평화 만들기>라는 다소 도전적인 책이다. 한일 종교학자 15인이 당면한 '폭력적 현실'에 종교가 '지구평화'를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풀어가고 있다. 다양한 종교적 관점에서 종교와 평화의 상호 연관성을 점검하며 종교의 평화적 기능을 찾으려는 '종교‧평화학' 구축의 일환이다.

 

이 책은 지난 2015년에 '종교와 평화의 상생을 도모하는 모임'으로 결성된 '레페스포럼(대표 이찬수)'의 학술적 토론 세 번째 작품이다. 첫 작품은 <종교 안에서 종교를 넘어: 불자와 그리스도인의 대화>(2017)였고, 두 번째는 <지속적 폭력과 간헐적 평화: 그 역전을 위한 종교적 대화>(2020)였다. '잘 팔리는' 책들은 아니었어도 의미가 적지 않았는데, 이번 세 번째 작품은 활자화되기까지의 과정이 더 돋보인다. 지난 2018년 초부터 2년간 익산 상주선원, 도쿄 조치대학, 서울 대성사, 욧카이치 쇼센지(正泉寺)국제종교문화연구소를 오가며 했던 '레페스심포지엄'의 결과물이니, 여러 사람들의 긴 이동 거리가 이 한 권에 녹아 들어가 있다.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인류세 시대, 기후위기, 전쟁과 분쟁, 인종차별' 등에 대한 평화적 대안을 종교적 차원에서 묻고 있다. 특히 '반일'과 '혐한'이라는 적대적 감정이 잔존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는 이때,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종교와 평화'의 관계와 역할을 새롭게 조명한다. 일본측 학자(6인)와 한국측 학자(9인)들은 상호 소통과 상생의 방법론을 '평화학'의 관점에서 모색하면서, 이들이 바라고 있는 <아시아종교평화학회>의 결성을 위한 지침서를 발간했다는 점에서도 시의적절한 의의를 지닌다.

 

제1부는 "거울: 평화를 비추는 종교적 지혜"다. 일본 정토진종의 원로 스님이자 아프리카문학 전공자인 기타지마 기신은 <평화구축과 종교-정토교에서 평화구축을 생각하다>에서 <불설무량수경>과 신란(親鸞)의 사상을 중심으로 오염된 말법(末法汚濁)의 현실에서 '비폭력으로 평화를 구축하는' 불교의 평화전략을 말해 주고 있다. 서강대 김용해 교수신부는 <평화담론과 종교의 지혜-가톨릭을 중심으로>를 통해, 세속국가체제에서 가톨릭이 평화라는 공동선을 실현해 가는 지혜를 제시한다. 동시에 평화담론과 종교의 진정한 가치들을 제시하고 있다. 류제동 박사는 <동아시아에서 종교갈등의 해소를 통한 평화 추구와 불교>라는 제목으로 불교의 기초이론을 중심으로 평화를 모색한다. 특히 그는 한, 중, 일에 스며든 불교의 무아(無我) 사상에서 사회적 차별철폐라는 실천적 모티브를 조명하고 있다. 원불교의 학자 원영상 교수는 <원불교의 영성과 환경, 그리고 남북의 평화문제>라는 제목으로, 종교가 남북 평화의 문제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를 자문하면서, 원불교의 개혁적이고 참여적인 영성적 실천원리를 하나의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장정태 한국민속불교학회 회장은 <원효의 평화사상>이라는 제목으로 각종 논쟁을 막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원효의 '화쟁사상(和爭思想)'을 소개하며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제2부 "역전: 굴절된 평화, 종교적 뒤집기"에서, 홍이표 야마나시에이와대학 교수는 <'팔굉일우'에 의한 평화 개념의 변용과 수용>이라는 제목을 글을 통해, 식민지 시기 일본이 내세운 '팔굉(온세상)일우(八紘一宇 = 世界一家)'의 논리가 어떻게 동양평화, 세계평화 개념으로 변용되어 갔는지 만주사변-태평양전쟁 시기의 종교계와 한국 기독교계의 태도를 중심으로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나고야가쿠인대학의 가미야마 미나코 교수는 <기독교 건축에 담긴 평화사상>이라는 주제의 글을 썼다. 그는 한-일 양국에 기독교 건물과 기타 건축물을 남긴 건축가 윌리엄 보리즈에 초점을 맞춰, 건축에 담긴 평화 사상에 비하여 천황을 찬미했던 그의 한계를 정리했다. 한편, 한국의 종교 평화 운동과 관련하여 널리 알려진 손원영 교수는 <개신교인에 의한 훼불사건과 개운사 종교평화모델>이라는 주제의 글을 실었다. 그는 개신교인에 의한 훼불사건을 '종교폭력을 줄여나가는 과정으로서의 감(減)폭력'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현재 한국사회가 '종교폭력'의 심화로 향할지 종교평화의 길로 회향할지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진단하고, '개운사 종교평화모델'로서 그 대안을 제시한다. 리츠메이칸대학의 야마모토 조호 박사는 <부산 아미동 대성사에서 발견한 새로운 한일교류>라는 제목을 통해, 부산 아미동에 있는 옛 일본인 묘지를 매개로 한 대성사에서의 새로운 한일교류를 고찰하면서 초국가적(trans-national)인 교류의 가능성을 고찰한다. 도호대학 명예교수 오바타 분쇼는 <절망 끝에 미래는 있는가>라는 제목에서 강제연행과 같은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이 없는 일본의 책임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으로서 평화구축의 작업을 제안한다.

 

제3부, "태도: 평화로 가는 인간적 자세"에서, 전 오오타니대학 데라바야시 오사무 교수는 <있다, 듣다, 돕다, 말하다, 묻다>라는 제목을 통해, '전쟁이 없는 상태'로서의 평화를 위한 종교인의 헌신적인 행위가 지역사회를 넘어, 국제교류의 장에서까지 실현되고 지속된다면 평화를 위협하고 파괴하려 드는 상황과 세력으로부터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본다. 동국대 문화학술원 HK연구교수인 박연주 박사는 <'같은' 것들이 '같이' 울린다>라는 주제 논문을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평화를 위한 '종교적' 윤리를 모색하면서 갈등을 사전에 방지하는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 '서로 간의 다름'을 인정하는 '거리를 두면서' '느슨한' 연대를 추구함으로써 자리행과 이타행을 동시적으로 성취하는 것을 제시한다. 이충범 협성대 교수는 <오해와 편견, 이슬람에 관한 소고>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의 양상과 불합리성을 지적한다. 중동지역 또는 무슬림과 관련된 폭력과 테러리즘의 역사적 연원과 현실적 배경을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무슬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극복하고, 평화 안에서 서로 연대하는 길을 모색한다. 전철후 성공회대학교 학술연구교수는 <인류세 시대와 종교의 평화론>이라는 제목에서, 지구적 차원에서 인류가 당면한 과제인 인류세와 기후위기는 근본적으로는 삶의 가치관과 인식,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타자화'를 넘어선 공공적 평화공동체의 가능성을 종교에서 찾고자 한다. 이찬수 레페스포럼 대표는 <세 가지 다원주의>라는 제목에서 '안보' '평화' '종교'라는 세 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자기중심적 안보가 도리어 불안을 야기하고, 남을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그 불안을 해소시켜 온 국제정치적 역학의 심층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 다원적 이해의 방식으로 평화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이상과 같이 15인의 한일 학자들은 폭력적 현실에 직면하여 종교가 어떻게 평화를 구축할 것인지 각자의 관점에서 문제점과 함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모두가 '종교로 평화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는 참신하고 세련된 학자들이다. 이들이 '종교평화학'의 주춧돌이자 디딤돌로 제시하는 기본적인 키워드는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찬수의 다음과 같은 글에서 집약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종교로 평화 만들기>를 기획한 그는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접근 중에 "평화는 폭력을 줄이는 과정"이라는 '감폭력(減暴力)'이라는 독특한 이론을 제시한 평화학자답게, '안보다원주의, 평화다원주의, 종교다원주의'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안보와 평화 그리고 종교라는 단어들이 각각 지니는 특수성을 고려하여, '소문자 복수(안보들, 평화들, 종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차이와 갈등 가운데, 상호 인정과 수용, 이해와 타협을 통해 '대문자 안보, 대문자 평화, 대문자 종교'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이 세 가지의 개념들이 늘 딜레마에 처해 있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서, 이른바 '트릴레마'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평화 목소리들을 인정하는 메시지를 세계에 전달해야 하고, 상호양보와 공통의 타협점을 찾는 다원주의적 과정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 책은 한일 학자들이 공동으로 집필하면서 한일 상호 간의 평화를 증진하려는 기획도 있는 만큼, 출판일도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했던 경술국치일인 8월 29일이다. 나라를 잃었던 슬픈 날의 역사를 더이상 반복하지 말고, 광복 76주년이자 분단 76주년이라는 고통의 역사를 안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어떻게 우리가 다시 평화를 '재무장'해야 할 것인지, 이 책을 통해서 조용히 반성적 차원에서 다각적으로 음미해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 <종교로 평화 만들기 - 반일과 혐한을 넘어>(레페스포럼 기획, 모시는사람들 펴냄) ⓒ모시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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