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했던 산파와 조산사
산파와 조산사, 쇠락의 문화적 의미는 무엇인가?
■ 출판사 서평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한국사회 기준)은 병원에서 태어난다. 태어날 뿐만 아니라, 임신하기 전부터 예비 부모의 심신에 대한 케어가 병원 또는 그와 유사한 전문기관에서 시행된다. 임신이 된 이후에 출산, 그리고 산후 조리와 유아의 예방접종 등 모든 과정은 병원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오늘날 우리들 대부분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는 ‘요람에서 무덤까지’가 아니라 ‘병원에서 병원까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주변에서는 산파 또는 조산사 간판이나 전단(전봇대에 부착된)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런 기억을 하는 사람은 이미 구세대에 속하겠지만, 산파나 조산사는 근대 시기에 급속도로 쇠락하여 소멸된 직업군 중의 하나인 셈이다.
출산은 인간의 생명이 시작되는 순간이지만, 인류 역사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죽음의 위험에 가장 무방비로, 그리고 가깝게 노출되는 사건이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인류 사회의 어느 공동체 집단을 막론하고 출산을 돕는 이들이 존재하였다. 지역과 시대를 따라 그 이름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지만 대체로 산파와 조산사 등으로 호칭되면서, 때로는 존경받는 대상으로서, 때로는 기피와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하면서도 극히 최근까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로 자리매김해 왔다.
산파나 조산사의 존재에 대해서는 전통 사회에서도 긍정적 입장과 부정적인 입장이 대체로 병존하여 왔으나, 특히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면서, 근대적인 의료체제가 공적인 의료로서 자리매김하면서 급격한 가치전도 내지 몰락과 소멸의 길로 내몰리게 되었다. 이는 근대 의료 체계가 도입되고 확산되는 시기와 속도에 따라 국가별, 지역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 경향성 자체는 일관된 흐름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산파-조산사가 몰락하는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역시 산과(産科)라는 근대적 의료부문이 성립하고 출산 부문에서의 권력을 획득하면서부터이다. 이는 출판 부문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병, 로, 사의 전 영역에 두루 보이는 일관된 흐름이라는 점에서 특이할 것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다만, 산파-조산사가 거의 전적으로 여성이었던 데 비하여, 초창기의 산과의사는 주로 남성이었다는 점에서 여성에게 특화된 출산에 관련된 조산 업무조차 남성 의사에게로 권력이 이양되는 과정이 나타난 점은 특기할 만한 사태이다.
오랫동안 출산은 하나의 의료적인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명이 탄생하고 한 가문 또는 공동체의 후대 계승 작업이 진행되며, 하나의 ‘문화권의 확장과 심화’가 벌어지는 ‘의식이며 의례’와 연결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 의례의 주관자 내지 전문가인 산파는 단순한 출산 조력자가 아니라 사회적 네트워크의 조정자라는 중대한 의미를 내포한 존재였다.
그러나 인류 사회의 발달과 더불어 (전통시대 기간 중에도) 의료의 전문화가 이루어지면서 산파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 왔다. 이는 세계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시기적인 차이는 있으나) 거의 일관된 흐름을 보여준다. 전 근대 의료 체계에서 근대 의료 체계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조산사라는 존재도 자리매김하였다.
전통시대의 산파가 나이 많은 여성으로서 오랜, 그리고 여러 차례의 경험에 기반하여 출산 조력자의 자리에 임했다면, 조산사는 사회적 필요에 의하여 단기간의 양성 교육 과정을 거쳐서 출산 조력자의 자격을 취득하고 조산(助産)에 임한 사람들이다. 이 또한 대체로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일관된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근대로의 이행이 완결되면서 산파든 조산사든 그 자리를 산과의사에게 내어주고, 표면적으로는 역사의 이면으로 사라져갔다. 그와 더불어 출산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회적 맥락이 의료 체계 내에로 귀속되고 말았으며, 오늘날은 전문화·제도화·현대화 된 체계 내에서 출산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지역, 어떤 공동체에도 산파나 조산사가 담당했던, 출산과 관련한 ‘의료 외적인 역할’ 또는 ‘넓은 의미의, 근본적인 의미의 출산의 의의’를 지탱하는 역할은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는 요소가 있게 마련이다. 특히 일본 사회에서는 여전히 ‘전문가로서의 산파’가 잔존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사회 발달 정도나 단계에 따라 아직도 유력하게 산파나 조산사에 의존하는 지역이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산파나 조산사의 역사와 의미를 살펴보아야 하는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의 입지나 역할의 변천 과정은 단지 그 계층/직군의 변천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인 생애 과정의 출발점인 출산을 매개로 하여 인류 사회가 걸어온 길을 짚어 보는 바로미터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 책 속으로
● 조산사와 산과의사의 동맹 관계 역시 완고하지 않았다. 산과의사는 의료 기술과 법률제도 등의 측면에서 양자간의 위계 관계를 구축하였고, 조산사의 지도와 감독을 맡았다. 산과의사가 외국의 경험을 참고했기 때문에 조산사는 단지 정상분만을 맡거나 의사의 분만을 보조하는 역할로 권한이 제한되었고, 이는 직업 발전의 또 다른 걸림돌이 되었다. 국가는 신흥 양의 직업 집단(산과의사와 조산사)을 위해 조산업무를 독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였는데, 바로 자격증 제도이다. 그러나 조산사 입장에서 자격증 제도는 양날의 검이었다. 의학 담론과 정치 담론에서는 조산사의 산파에 대한 우선권을 보장하였으나 조산사의 직업적 권한 역시 정상분만의 범위로 제한된 것이다. 본문에서 조산사의 산파에 대한 비판과 직업 권한 제약에 대한 불만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격차를 어느 정도 확인시켜주며, 근대 중국 조산사의 직업적 위치의 난처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 본문 42쪽
● 중국 사회에는 고대부터 ‘아이 받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자’가 나타났고 대개 여성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 왔으며 명청 대에는 온파, 접생파, 수생파 등의 호칭을 사용하였다. 전종접대를 중요시했던 중국 사회에서 여성의 건강한 출산은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아이를 받는 여성’은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런데 산파는 이러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 의사와 문인들에게 의료적 기술이 부족하고 부도덕한 존재로 평가되기도 하였다. 산파를 폄하하는 시각은 주로 송대 이후 신유학 권위가 확대되고 성별 분리가 강해지면서 강화되었다. 특히 명청 대에는 사대부 엘리트 계층과 ‘유의’(儒醫)로 대표되는 남성 의사들이 산파의 무지함과 부도덕함을 비난하였고, 주로 남성들이 저자였던 문학작품에서도 산파는 함부로 출산 과정을 재촉하고 산모를 위험에 빠트리며 돈만 밝히는 탐욕스러운 존재로 묘사되기도 했다. 명청 대의 대표적인 통속 산과의서인 『달생편』 역시 남성 위주의 도덕적 규율과 행위를 산모에게 강요하면서, 산파를 출산 과정에 인위적으로 개입하여 난산을 초래하는 ‘성급하고’, ‘인내심 없는’, ‘우매한’ 존재로 형상화했다. - 본문 96쪽
● 1970년대 이후 대만의 병원과 의사의 수가 증가하고 치료가 편리해졌으며, 1970년대 초반에는 의사 수가 조산사 수를 앞질렀다. 조산사는 전문적인 조산 교육을 받은 의료 인력이었으나 1980년대 이후 대만 사회에서 조산사는 점차 사라졌는데, 아마도 가족계획, 보험제도의 발달이 주요 원인이었을 것이다. 1950년대부터 대만 정부는 공무원 보험과 노동보험을 잇달아 시행하였는데, 그중 가장 먼저 시작된 공무원 보험에는 정부와 보험계약을 맺은 병원만 출산보조를 받을 수 있었고 조산소는 보험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공무원 보험을 가진 신분의 산모는 모두 병원에서 출산을 하게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도시 지역에서 가장 분명히 드러났다. 공무원 보험이나 노동자 보험을 막론하고 모두 반드시 병원에서 출산해야 출산급여의 보조를 받을 수 있었고, 이는 유형·무형으로 큰 병원에서의 출산문화를 강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산모의 분만 장소에 대한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 본문 123쪽
● 병원 근무 조산사가 증가한 1960년대 이후에 미셸 푸코(1979)가 주창한 의료관리 시스템이 일본에서도 보급됐다. 조산사는 집이나 조산원에서 자율적으로 출산을 돕는 존재가 아니라 병원 내에서 임산부를 보조하는 지위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 조산사는 자율적·주체적으로 의료 행위를 수행하는 전문가로서 의료 업무 분야에서 특화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산과의사와의 협력관계를 구축하면서 임산부와 대화하는 의료 행위를 추진함으로써 의사와 조산사와 임산부가 각각의 역할을 자각하게 되었다. 조산사의 직능 전문성 추구가 삼자 간 의료계층 관계를 타파할 가능성을 가져왔음은 본 논문의 분석을 통해 밝혀졌다고 생각한다. - 본문 158쪽
● 20세기 초 미국의 이민자 사회를 돌아보며, 마이클 M. 데이비스는 이민자의 어려움을 이해했고 이들의 문화적 관습이 가져온 차이도 인정했다. 온정주의적 시선이 분명히 있었지만 이민자 사회를 자극적으로 비판하지 않아서였는지 『이민자 건강과 지역사회』는 이후 큰 관심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데이비스가 이민자 사회의 여러 문제 중 ‘산파’에도 주목했다는 점은 그만큼 출산 과정에 불균형이 두드러졌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21세기에도 인종·계급 간 의료 불균형이 여전함에 따라, 우리는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출산에 수반된 역사적 변화를 논의해야 한다. 지난 세기 동안 모성 및 영아사망률은 극적으로 감소했고, 아이를 낳는 것은 이전만큼 여성에게 위험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임산부의 인종 및 민족 배경에 따른 모성 사망률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 미국은 저개발 국가와 비교해도 꽤 높은 모성 사망률을 보인다. 흑인 산모는 사회·경제적 배경과 무관하게 백인보다 사망할 확률이 세 배나 높다. 저소득층 이민자 여성의 상황 역시 이보다 낫지 않다. 흑인만큼은 아니라고 하지만, 라티노 이민자 여성의 모성 사망률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소외 계층의 모성 사망률 증가에 대한 우려와 더불어 출산 기술이 점차 변화하고 있다는 점도 장차 연구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 본문 1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