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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동학

우울한섬 2022. 5. 30. 17:33
김동련 대하소설

소설 동학(전6권)

■ 이 책은…

“소설 동학”은 3부 6권으로 구성한 대하 동학소설이다. 동학을 창도한 수운 최제우의 어린 시절부터 성장과 구도 그리고 득도와 포덕, 순도에 이르는 일생을 다루는 1부, 해월 최시형의 동학 입도와 동학 수련, 도통 승계와 고비원주하는 간난신고의 30여 년 역사를 다루며 교조신원운동으로 다시 역사의 전면에 나서는 2부, 그리고 교조신원운동 이후 동학혁명이 전개되는 3부로 구성되고 각 부를 2권으로 나누어, 모두 6권으로 구성되었다. 역사(팩트) 흐름에 충실하면서도,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소설적 상상력의 힘으로 살아 있는 동학, 지지 않는 동학, 더불어 역사를 만들어가는 동학 민중 형상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내어, 한국 대하소설의 한 흐름 속에 자리매김할 대작으로 완성하였다.

 

  • 분야 : 문학/소설
  • 저자 : 김동련
  • 발행일 : 2022년 5월 31일
  • 가격 : 92,000원
  • 페이지 : 2,104쪽
  • 제책 : 무선
  • 판형 : 140×210mm
  • ISBN(세트) : 979-11-6629-107-4 (04810)

1권: 나라는 것은 무엇인가 1 / 352쪽 / 15,000원 / ISBN 979-11-6629-108-1 (04810)
2권: 나라는 것은 무엇인가 2 / 336쪽 / 15,000원 / ISBN 979-11-6629-109-8 (04810)
3권: 세계라는 것은 무엇인가 1 / 368쪽 / 16,000원 / ISBN 979-11-6629-110-4 (04810)
4권: 세계라는 것은 무엇인가 2 / 376쪽 / 16,000원 / ISBN 979-11-6629-111-1 (04810)
5권: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 1 / 336쪽 / 15,000원 / ISBN 979-11-6629-112-8 (04810)
6권: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 2 / 336쪽 / 15,000원 / ISBN 979-11-6629-113-5 (04810)

■ 출판사 서평

역사에 패배란 없다, 다시 시작, 다시 개벽이다!

1부(1, 2권) "나라는 것은 무엇인가"는 주로 수운을 이야기한다. 그간의 동학-수운을 다룬 소설에서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허구적 인물이나 에피소드가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그 서술이 역사 기록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표영삼의 "표영삼의 동학이야기"(모시는사람들) 이상으로 동학 창도기를 소설화한 작품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표영삼은 끊임없이 객관적 동학역사 서술에 매진하였지만, 그것을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나가는 데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였다고 본다.)

김동련의 <소설 동학>이 성취한 부분은 바로 동학 창도기의 수운의 고뇌, 그리고 그가 깨달은, 혹은 창도한 동학의 철학적, 사상적, 종교적(영성적) 깊이에 도달하였거나, 도달하는 경로를 열어 보여 주었다는 데 있다. 김동련은 수십 개의 징검돌처럼 놓인 수운의 역사(팩트) 사이를 동학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수많은 삽화(揷話)들로 가득 흐르고 흐르고 흐르게 하여 동학 창도기의 깊고 풍부한 개벽의 강물을 펼쳐 보인다.

예컨대 수운 청년기의 장궁행상(藏弓行商)은 수운이 무과 시험에 응시하여 실기나 대책(對策) 모두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두지만, 탐관오리의 농간으로 등제에 실패하고 마는 장면을 드라마틱하고 서사시적으로 그려낸다. 이 장면은 마치 KBS 대하 사극 내지 블록버스터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또, 수운이 '행상(行商)'으로서 '성공적인 길을 걸어가는 모습'도 역사적 상상력의 범위를 이탈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흥미진진하게 그려 보인다. 이는 <장길산>이나 <임꺽정>의 한 장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수운이 한울님과 문답을 나누는 체험을 하고, 신유년(1861)에 포덕을 시작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용담으로 밀려들어왔을 때의 온갖 행태들이 짧지만 강렬한 에피소드들로 모두 소화되고 있다. 이 장면 하나하나는 동학의 역사 기록(관변기록)의 내용들을 관의 관점이 아니라, 민중 자신의 관점 혹은 수운-동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것으로 그려 보인다.

2부(3, 4권) "세계라는 것은 무엇인가"는 수운 최제우가 대구장대에서 좌도난정률의 죄목으로 참형당한 이후부터 이필제의 영해교조신원운동을 거쳐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하기 직전, 이른바 교조신원운동이 전개되는 1893년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한다. 이 시기는 동학의 역사에서도 파란만장하였으나, 조선사회 전체가 거대한 세계사에 편입되면서 끊임없이 망국으로의 길을 걸어가던 시기이다. 그 속에서 동학 민중은 민중대로, 그리고 임금과 신하들은 또 그들대로 모색과 협잡, 궁리와 좌절을 거듭해 간다.

동학 창도기에는 수운 자신이든 그 주변에 몰려들었던 '동학 민중'들이든 누구나 개벽 세상에 대한 희망, 사람이 한울되는 세상에 대한 전망을 안고 달려갔다면, 이 시기에는 좌절과 고난 속에서 희망을 씨 뿌리고 그것을 맨손, 맨몸으로 일궈 나가며, 희망의 이유를 조직하는 해월과 그 주변 동학 민중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작가는 이들 장면들을 일일이 설명하기보다는 해월을 둘러싼 인물들과 끊임없이 동학을 침탈하는 조정 주변 인물들의 치열한 자기 존재 증명의 노력들을 대립해서 보여주는 것을 그려나간다. 단순한 선악 대결이나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과 같은 어설픈 역사 그리기는 없다. 오직 소설적 언어로서 30년의 역사를 끈질기게 묘파해 나간다.

이러한 소설적(동학적) 전개 방식은 이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이라고 할 문장에 실려서 전달됨으로써 더욱 강력한 빛을 발한다. 즉 간결하고 청신하고, 품격이 넘치면서도 강건한 문체는 독자들을 시종일관 동학의 역사 한가운데에서 그 호흡을 함께하게 한다. 조선왕조실록이나 당대의 문집, 또는 상소문 등을 그대로 인용한 것 같은 수많은 문장들은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며 발화함으로써 관계 맺고 그리하여 사회와 역사를 이루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당대 인물들을 생생하게 살려내고, 독자들을 그 속으로 끌어들인다.

3부(5, 6권)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는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세계사적 지평'에서의 조선 사회와, 그 사이를 헤쳐 나가는 동학의 모습을 주로 동학농민혁명의 전개 과정을 통해 그려나간다. 이 속에서 전봉준-손화중-김개남 같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역사 인물만이 아니라, 동학을 적대시하며 대립하거나, 동학 속으로 침투하거나 간에 다양한 인물군상들을 다양한 어조로 조명해 나간다. 그간의 동학 소설들이 동학농민혁명의 전개과정에서 동학의 정당성을 과장하고 지배세력과 외세의 부당함을 강조하는 데 치우쳐서, 무선무악한 역사의 잣대(균형)를 상실하였다면, 이 소설은 끝내 그 관조와 냉철을 빼앗기지 않는 강인함을 유지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환상적인 대목 중의 하나는 '여동학' 장흥 '이소사'에 관한 부분이다. 이소사는 관변기록에도 등장하는 동학농민혁명의 '여성 지도자'이면서 신이한 행적을 통해 장흥 일대의 동학농민군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지만, 그 기록이 너무도 소략하여,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작가는 동학적 상상력을 통해 이소사에게 풍부한 서사를 부여하였다. 이를 위해 저자는 1970년 영해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이필제의 최초의 교조신원운동에서부터 그 역사를 써 나왔다. 그것을 통해 역사 기록으로 남겨진 이소사의 신이한 행적에 그럴 듯한 개연성과 판타지성을 동시에 제공한다.

이런 방식으로 “소설 동학”은 동학의 드러난 역사 이면에 비장된 비결과 비기, 그리고 현기들에 대한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6권"이나 되는 대하소설임에도, 동학에 대하여, 그리고 역사에 대하여 ‘다 말해 버리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동학 속으로, 동학이 펼쳐지는 역사 속으로, 그 역사를 만들어가는 인물들의 이야기 속으로, 그리고 그 역사가 흐르는 우리의 국토 속으로 계속해서 파고들기를 요청하고 유인한다.

“소설 동학”의 또 하나의 미덕은 잊히고 묻힌 우리말을 풍부히 살려서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임꺽정> <장길산> 등을 지나 <토지>나 <혼불> 등에서도 추구되었던 바이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독해력을 저감시킨다는 위험을 더 크게 감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언어들을 되살려 씀으로써, 우리는 말과 더불어 사라져 버린 민중의 세계관과 삶을 더 폭넓게 교접하고 새로운 세계를 상상할 수 있게 된다. 하나의 단어는 하나의 우주를 담고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을 읽으며 더욱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강력한 이 소설의 무기는 '동학적 상상력'을 극한도로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수운의 동학 창도 과정에서의 천사문답과 같은 '종교적 신비체험'을 그 신비성과 합리성 사이의 균형을 잃지 않고 '역사소설'적 감각 속에서 그려 보인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동학의 교리나 교사(敎史)적 관점의 우수성(?)을 종교적 도그마에 굴복하지 않는 형태로 흥미진진하게 그려냄으로써, 살아 있는 동학, 열린 동학, 우리 안의 동학을 살려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열린 결말을 채택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동학은 해월의 수제자인 손병희로 승계되면서 1905년 이후 천도교로 개칭하고 3.1운동과 같은 역사의 전면에 다시금 나서게 된다. 이 소설은 거기까지를 다루고 있지 않으나, 그곳으로의 지평을 바라보고 있다. '바라볼 뿐' 어설픈 허구적 낙관이나, 드러난 역사에 매몰된 허접한 비관 어느 쪽에도 이 소설은 가담하지 않는다. 소설 내내 그래 왔듯이, 드러난 역사와 드러나지 않은 흐름 모두를 껴안고, 역사의 지평 너머로 달려갈 뿐이다. 그 지평 너머를 살아가는 우리는 다시 돌이켜 동학의 실재를 다시 개벽함으로써, 오늘 우리 존재의 실상을 다시 개벽하는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역사의 질곡에 대한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다시 새 날을 열어갈 힘이 된다.

 

■ 저자 인터뷰

1. 『소설 동학』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있으시다면?

저는 강원도 묵호에서 중학을 졸업한 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17살 먹던 해 봄부터 방파제 축조회사인 흥아공작소에 급사로 일했습니다. 30톤 기중기선 화장인 또래의 친구가 태극출판사에서 나온 『위대한 한국인』 전집을 구했으나, 자기는 도저히 읽어내지 못하겠다고 해 제가 넘겨받았습니다.
그 전집 두 번째 책이 해월 최시형이었습니다.
이승만이나 김옥균 등 여러 사람이 소개되어 있었으나 그런 사람들에게서는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해월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저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스승이 순도한 후 30년 동안 포졸들에게 쫓기는 절박한 상황 가운데서 홀로 전국을 돌며 동학 조직을 재건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신념을 가진 한 사람의 옳고 강한 의지가 불의로 점철된 잘못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이 들면서 몸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해월 선생님의 행적에 비하면 기독교에서 전하는 바울의 전도 여행 같은 것은 어린아이 장난같아 감히 비교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해월 선생님에 대한 소설을 써보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해월 선생님의 이야기를 쓰려면 해월 선생님께 그러한 동력을 제공한 수운 선생님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수운과 해월 두 분의 이야기가 마무리되려면 두 분의 뜻을 행동으로 옮긴 전봉준 장군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험난한 세월이 오래 이어졌으나 저는 이 꿈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 꿈은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여섯 권의 대하소설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2. 6권으로 구성된 만만찮은 분량의 이 소설의 출간이, 2022년이라는 현재 시점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이겠는지요?

작가는 항상 무엇을 왜 써야 하는가를 고민합니다. 세상에 촉수를 내어 끊임없이 돌아가는 상황을 점검합니다. 그것이 좁고 어두운 방 속에 앉아 홀로 자판을 두드리면서도 창문을 계속 열어 두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역사는 이긴 자의 기록이고 권력자의 변명이기 쉽습니다. 우리는 항상 역사를 우리가 사는 시대의 현실에 맞추어 우리의 깨어난 의식으로 재해석해야 합니다. 그러한 작업이야말로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하고 신비한 존재인 나의 올곧고 자유로운 삶을 보장해 줍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긴 자와 권력자들이 만들어 내는 저들의 사욕을 지키는 왜곡된 담론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이 진실로 무엇이고 내가 진실로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대낮에 나온 올빼미처럼 개신거리며 살다가 평생을 낭비하고 말 것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서로 더불어 사랑하며 사는 삶보다 더한 가치는 없다고.

역사를 통털어 왕조 시대 백성의 삶은 대개 모두 그저 그렇게 고달팠지만, 특히 18세기 말 조선 백성의 삶은 말로 다하기 어려운 비참의 극치였습니다. 백성의 삶을 편안하게 가꾸어야 할 책임이 있는 왕은 소수의 벼슬아치를 데리고 백성을 노예로 삼아 그들의 살과 뼈를 갈아 먹으며 서세동점의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태평성대를 누렸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키우며 작으나마 미래의 소박한 희망을 소망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서로 존중하고 서로 존중받으며 살기를 원합니다.
당시를 살던 백성들에게는 이러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가장 기본이 되는 꿈이 용납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불의의 사태는 조선이라는 틀이 유지되는 한 바뀔 수가 없었습니다. 백성들은 육체와 정신의 고통에 더해 한 존재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철학적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육체와 정신의 고통보다 철학적 고통이 더 괴롭습니다.
이러한 백성들의 고통을 구제하기 위해 백성 속에서 나온 것이 동학입니다. 나라는 것이 무엇인지, 세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를 동학의 가르침을 통해 자각한 푸른 눈을 뜬 백성들이 잘못된 세상을 고치는 마중물이 되기 위해 서슴없이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16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세상은 많이 변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우리 민족이 당면한 상황은 결코 녹녹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160년 전 동학 도인들이 맞이했던 상황을 다시 맞이하고 있다는 생각에 두렵습니다. 바로 옆에서 중국이 일어나면서 미국과 갈등하는 국면에 우리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반거충이가 된 일본은 아직도 퍼석한 손톱을 세우고 우리를 후비려 옆에서 어정거립니다.
빈부격차는 위험할 정도로 커지고 환경은 무지막지하게 파괴되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지금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수준으로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상에 발 빠르고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입으로는 그럴듯하게 때 묻은 왕사발을 부시겠다고 천안 삼거리처럼 시끄러우나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는 자세보다는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에 눈이 먼 자들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뿐만 아닙니다. 언론도 고위 관료도 사법부도 성직자도 재벌도 하다못해 대학교수 중에도 큰 틀을 보지 못하고 이기적인 탐욕으로 생각의 목이 굳은 자들이 매우 흔합니다.
외세에 빌붙고 권력을 탐하며 백성들을 담보로 삼아 제 이득만 챙기는 비열한 자들이 그때도 그랬고 지금 세상에도 수두룩합니다.
저는 이전 동학 도인들이 들었던 횃불이 광화문의 밤을 밝혔던 촛불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다시 푸른 눈을 뜬 백성들이 자신이 진정 어떤 존재인지 세상이 진정 어떤 사태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진정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에 대해 다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런 시대적 과제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동학을 다시 꺼내어 우리 민족의 빛나는 자산인 동학의 정신을 다시 반추하여 현실의 사태를 밝게 인식했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동학이 진정 추구하는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를 얻어 당면한 시대의 난제를 슬기롭게 풀어 자신의 올곧고 자유로운 삶을 풍족하게 누리기를 희망하며 이 책을 썼습니다.

3. 1부(1, 2권) "나라는 것은 무엇인가"는 주로 수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수운 최제우는 어떤 인물입니까?

하나의 종교를 이루어 낸 사람은 세월이 지나면서 그 종교의 교리가 체계가 잡히고 조직이 커지면 신격화되기 일쑤입니다. 저는 그러한 현상을 바람직하게 보지 않습니다. 그것이 후대의 성직자나 권력자에 이용되어 올곧고 자유로워야 할 사람들의 삶을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번화한 세상을 살아가는 실존적인 한 인간으로서의 수운을 살펴보려 노력했습니다.
신분으로 유지되는 사회에서 양반 신분이지만 경제적으로 몰락한 유생의 재가녀 자식은 사실상 제도권으로의 진입이 막혀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부친으로부터 유학을 배우고 스스로 무예를 익혀 영민한 그로서는 매우 불만스러운 상황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제 소설에서는 수운이 일부 김항의 지도를 받는 것으로 서술되어 있으나 사실상 당시 연담 이운규 선생 문하에 주역을 다시 풀이한 정역을 하는 일부 김항과 실천 불교 운동인 남학을 하는 김광화 그리고 유불선을 엮어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가 드러나게 뛰어난 제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수운은 연담의 가르침과 영향을 받은 듯합니다.
그는 그를 둘러싼 불만스러운 상황에 절망하지 않고 왕조 말기의 부패로 무너져 가는 조선을 대체할 새로운 틀에 대해 젊은 시절부터 이성적으로 접근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건 피나는 노력이 시공에 무겁게 쌓여야 비로소 세상은 속살을 조금 열어주는 법입니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삶을 목숨을 걸고 실천한 대장부였습니다.

4. 『소설 동학』은 동학 창도기 수운의 고뇌, 그리고 수운이 깨달은(혹은 창도한) 동학의 철학적, 사상적, 종교적(영성적) 깊이에 도달하는 경로를 열어 보여준 것에 큰 성과가 있다고 봅니다. 이 부분에서 특히 염두에 두신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저는 하나의 거대한 담론은 결코 독자적으로 갑자기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개개의 담론은 모두가 서로 의지하며 오랜 세월을 통해 축적된 인류의 지혜에서 나옵니다.
중국의 유불도도 그렇습니다. 세 담론은 서로 부딪치며 회통하며 시대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 몸부림쳤습니다.
동학은 수운이 유불선의 가치를 모아 창도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유불선 속에 담긴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가려내는 치열한 작업이 수운에게 있었을 것입니다.
이 작업을 수운은 20살에서 30살 사이에 치러냈습니다. 이때 수운의 직업은 장시를 도는 행상이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천도교 문헌에서는 이때 당시의 수운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동학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이 부분에 대한 의논이 매우 다르고 그다지 활발하지도 않습니다.
그 이유는 동학의 배경이 된 유불선이라는 거대 담론에 대한 깊은 천착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동양철학 박사과정을 이수하면서 다행히 엄한 스승을 만나 이 부분에 대해 다소간의 연구가 있었습니다.
책을 읽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이 책에서 일반인이 상식의 수준에서 알고 있던 유불선에 대한 이해를 확 바꾸는 노력을 했습니다.
유학은 제 박사논문 서론에 언급했듯이 동아시아 유학 사상사를 완전히 다시 쓰는 수준의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불교도 싯다르타가 창시한 것이 아니라 인더스 문명에서 나온 강가의 지혜를 싯다르타가 시대에 맞게 재해석한 것이라 했으니 일반 불교 신자들은 아마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습니다. 제 독단이 아니라 동서양의 여러 학자가 이미 논문이나 책으로 언급한 내용들입니다.
선교는 고대 홍산문명에서 나온 우리 민족의 위대한 자산이었습니다. 선교에 대한 연구는 이미 국내외 여러 학자에 의해 커다란 진척이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도가를 배운 김경수 선생님도 이미 고대 선가에 대한 깊은 연구를 진행하고 계셨습니다.
이러한 유불선의 담론을 지배자가 아닌 철저한 백성의 시각에서 재해석해 수운에게 담았습니다. 수운은 재해석된 유불선을 고대 선가의 천부경을 관통하는 삼일태극으로 종합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어떻게든 쉽고 재미있게 표현하려 애를 썼으나 조금 어렵게 서술되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대학원 석박사 과정 때 제 지도교수였던 오이환 선생님은 아주 대단한 작업을 했다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이 부분은 독자들의 요청이 있으면 북토크 행사를 통해 같이 자세하게 천착해 보기를 희망합니다.
사실상 중국의 유가와 도가가 고조선의 고대 선가의 풍요로운 사유를 한 자락씩 잡아 일어난 담론이라는 것은 이미 청하나 북경 대학 교수들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고조선이 멸망하고 다시 일어선 삼국시대에 왕들의 필요로 중국의 유가와 불교가 들어오면서 고대 선가는 백성들 속으로 은둔했습니다. 그 후 고려 시대에 묘청에 의해 다시 일어났으나 유학자인 김부식에게 다시 밀립니다. 그러나 선가는 사라지지 않고 백성 사이에서 면면하게 맥을 잇다가 조선 말 백성들의 삶을 무너뜨리는 총체적인 위기 상황에서 수운에 의해 다시 표면에 드러나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최근에 나오는 박사논문들이 있습니다.

수운이 구도하는 세세한 과정은 제가 오랫동안 나름대로 호흡과 명상을 통해 수련했던 경험을 담았습니다. 이 내용은 수련하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것들이어서 독자들이 한 번 의미를 두고 읽어보셔도 좋다고 봅니다.

5. 2부(3, 4권) “세상이란 과연 무엇인가"에는 동학혁명 발발 전까지의 파란만장한 동학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독자들을 위해) 이 시기, 여러 등장인물의 관점과 삶의 방식을 요약해서 설명해 주시지요.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세 가지 고통을 경험합니다. 육체적인 고통 정신적인 고통 철학적인 고통이 그것입니다.
육체적인 고통은 쉬거나 약을 먹으면 해결됩니다. 정신적인 고통은 역시 쉬거나 굿을 하거나 의사의 치료를 받으면 가라앉습니다. 문제는 철학적인 고통입니다.
철학적 고통은 한 존재로서 존중받아 자유로운 삶을 살아야 할 사람이 무지막한 권력이나 잘못된 제도의 억압으로 동물과 같은 천대를 받는 상황에서 생깁니다. 이 고통은 존재의 자각으로 오는 새로운 세계관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수운이 동학을 창시한 이후 신분에 얽매어 고통받던 백성들이 동학에 접하면서 새롭게 자기 존재에 대한 자각을 일으킵니다. 그들이 그러한 자각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열망이 이 책에 가득 실려 있습니다.
이러한 자각은 오늘날에도 절대로 필요합니다.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담론이 강요하는 기업이 생산한 상품만 소비하는 나약한 배때벗은 존재가 아닙니다. 관료제라는 거대한 틀에 얽매여 하염없이 돌아가는 작은 톱니바퀴가 아닙니다.
각 개인은 자신이 이 우주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답고 신비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6. 간결하고 청신하고, 품격이 넘치면서도 강건한 문체는 독자들을 시종일관 동학의 역사 한가운데에서 그 호흡을 함께하게 합니다. 작가님의 첫 소설로 알고 있는데, 이러한 문체는 어떤 과정을 거쳐 체득하신 것인지요?

제 첫 소설은 자전적 소설인 『우리가 사랑할 때』입니다. 도서출판 밥북에서 나왔습니다.
두 번째 책은 인문서적으로 『천자문으로 세상보기』인데 인간사랑에서 출판했습니다.
이 책은 일본의 시라카와 시즈카의 『한자의 세계』와 우메하라 다케시의 『주술의 세계』를 참고해 제가 한자의 어원을 새롭게 해석한 글입니다. 이제까지 한자는 중국 후한 시대의 허신이 지은 『설문해자』에 의존해 어원을 이해했습니다.
저는 설문해자의 잘못된 해석을 바로잡고 상나라의 갑골문과 주술에 의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그것이 『천자문으로 세상보기』입니다. 이 책은 가치를 인정 받아 여러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특히 초등 방과후 수업 한문 선생님들이 교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번 책은 제 세 번째 글입니다. 앞서 출간한 두 권의 책에서 사실은 문장 연습을 알차게 한 셈입니다.
문체라는 것은 글쓰기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문장에 형용사가 들어가면 일단 전달하려는 정보의 힘이 약화됩니다. 주장에 자신이 부족할 때 저도 모르게 형용사를 쓰게 됩니다. 또는 중의적으로 표현해야 할 때에도 형용사를 잘 이용합니다.
저는 50년 세월 동안 동학이라는 주제를 삭히고 20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 단 2년 동안에 소설로 풀어냈습니다. 그만큼 전달하려는 정보에 대한 자신이 있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문장이 짧아졌을 겁니다. 또는 당시를 살았던 백성들의 실상을 전달하는 데 형용사가 들어간 미사여구가 옳지 않다는 생각도 문장을 짧게 했습니다.
백성들의 삶을 서술하는 대목은 대개 짧은 문장과 우리 풍토에 맞는 표현을 담았습니다. 그러나 왕이나 벼슬아치들의 대화에는 의도적으로 한자 투로 길게 늘여 지루하고 답답한 느낌을 유도했습니다. 때로는 대화 속에서 그들의 무식을 보이려 일부러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말하게 하는 문장도 넣었습니다.

7. 《소설 동학》은 "6권"이나 되는 대하소설임에도, 독자들로 하여금 동학 속으로, 역사 속으로, 또 그 역사를 만들어가는 인물들의 이야기 속으로 계속해서 파고들기를 요청하고 유인합니다. 그렇게 의도하신 이유가 있으셨는지요?

제 스승인 오이환 선생님께서 평소에 강조하시는 자료로써 대신 말하게 하라는 가르침에 충실하려 노력했습니다. 이 글은 소설의 형식을 빌리지만 일반적인 소설의 형식을 조금 무시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자료가 많이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학자들이 말하는 집단이성이라는 것이 실제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백성들의 공론의 장이 되고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언론도 제 이득에 맞추어 거짓 정보를 남발하고 있습니다. 한 분야만 조금 깊게 공부해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된 사람들도 마치 자신이 모든 분야를 다 잘 아는 것처럼 처신합니다.
기업은 과장광고를 남발해 어쨌든 물건만 팔면 게임에 이겼다고 자부합니다.

사태의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료에 의존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료를 객관적이면서도 자주적으로 해석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 책을 쓰면서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또는 『비변사등록』 또는 『일본외무성자료』를 직접 다시 번역했습니다.
자료의 내용은 모두 왕이나 관료의 시각에서 쓴 것들이어서 사태에 대한 진실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백성의 시각으로 다시 해석했습니다.
이러한 작업이 아마 독자들에게 동학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진실을 찾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켰을 수도 있습니다.

8. 이 소설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동학적 상상력'을 극한도로 발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수운의 동학 창도 과정에서의 천사문답과 같은 '종교적 신비체험'입니다. 신비성과 합리성 사이의 균형을 잃지 않고 '역사소설'적 감각 속에서 이를 그려 보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나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이 공존합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세상이 더 근원적입니다.
제 경험을 짧게 해보겠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노동자의 장남으로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함흥에서 건재상을 하다 전쟁으로 잠시 남쪽으로 피신했다가 삼팔선이 막히면서 묵호에 정착해 항에서 리어카를 끄는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장사를 하던 분에게 노동은 너무도 힘이 겨웠던 듯합니다. 아버지는 삶에 좌절해 하루에 소주를 한 되씩 드셨습니다. 술에 취해 길가에 쓰러지면 아들들이 같이 나가 집으로 업어오곤 했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간암으로 돌아가시고 저는 중학을 가까스로 졸업한 소년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 후의 거친 삶은 떠올리기가 괴롭습니다. 저는 삶에 고난이 다가올 때마다 속으로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살아냈습니다. 어쨌든 세월은 잘 흘러갔습니다. 오랜 시간 저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들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결혼해 아들을 얻고 작가가 되려는 꿈을 안고 늦게 공부를 시작해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철학박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첫 장편소설 『우리가 사랑할 때』를 쓰던 어느 겨울 늦은 밤이었습니다. 갑자기 어릴 적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편린이 떠올랐습니다.
추운 겨울날 만취한 아버지가 늦은 밤에 집에 오셨습니다. 장갑도 끼지 않아 얼어 부르튼 손에 전과 한 권을 들고 계셨습니다. 그것을 저에게 말없이 건네주고 아버지는 윗방으로 가 주무셨습니다. 전과가 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초등 6학년 전과였습니다. 그것도 오래되어 앞장과 뒷장은 떨어지고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한 책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초등 3학년이었습니다.
그 전과를 등잔불 밑에서 일주일 만에 다 읽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결코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요.
추운 겨울 만취한 아버지의 눈에 길가에 누가 버린 전과가 들어왔을 것입니다. 가난해서 책을 좋아하는 아들에게 책 한 권 사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그 전과를 손에 들었을 것입니다. 취해서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겨울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전과를 쥔 손에 힘을 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제게 전과를 건네고 주무셨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날 밤 저에게 낡은 전과 한 권으로 마법을 걸었습니다. 그 마법 속에서 저는 지금까지고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고 삽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을 동시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그 깊은 속살을 잘 보여주지 않습니다.
열심히 희구하고 추구하고 파고드는 사람에게 한 부분을 슬며시 보여주곤 합니다. 세상은 신비에 가득 차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 역시 신비에 가득차 있습니다.
차가운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9. 소설은 열린 결말로 끝을 봅니다. 하지만 어설픈 허구적 낙관이나 드러난 역사에 매몰된 허섭한 비관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으면서 역사의 지평 너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지평 너머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 소설을 통해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어떤 것일지요?

세상을 일구어 가는 주체는 소수의 권력자나 전문가가 아닙니다.
세상을 일구는 거대한 지혜와 힘은 오직 백성들에게서 나옵니다.
역사는 자주 악마의 편에 서곤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역사는 바다에 비유하면 표면의 파도에 불과합니다.
파도는 바람을 맞고 일었다 바람이 자면 잦습니다.
깊은 바다속을 도도하게 흐르는 거대한 해류는 드러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거대한 해류야말로 바다의 원류라 할 수 있겠지요.
우리 주변에 흔한 갑남을녀야 말로 깊은 바다를 흐르는 해류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 갑남을녀의 성실한 하루의 삶이 역사를 일구는 힘입니다.
이들의 성실한 삶이 이어지는 한 인간의 역사는 희망이 있습니다.

■ 책 속으로

○ 제선은 장사를 접고 용담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틀에 대해 깊이 사색했다.
나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나는 이전에 김 진사댁 마당에 뒹굴면서
몸의 가장 말단에 있는 손가락과 발가락을 선명하게 경험했다.
그것은 틀림없이 내 몸의 한 부분이었다.
그러면 몸이란 것은 과연 무엇인가?
몸은 물질의 작은 조각들이 쌓여 이루어졌다.
몸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물질을 먹어야 하고,
못쓰게 되고 원치 않는 물질은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몸을 살아 있게 하는 생명이란 과연 무엇인가?
작은 물질 조각들은 생명이 없는데 이 몸에는 어떻게 생명이 깃들게 되었을까?
어느 정도의 복잡한 조직이 되면 생명이 들어오는 것일까?
생명이 들어오는 문지방은 과연 어디인가?
이것은 기적 같은 사건이다.<1권 본문 144쪽>

○ 며칠이 지난 후 제선은 다시 뜻을 다잡았다.
상제님을 만나 길을 찾기 전에는
이 골짜기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제선은 스스로 이름을 제우, 자는 성묵, 호를 수운으로 고쳤다.
제우란 어리석은 세상을 건진다는 뜻이고,
성묵은 도가 극치에 이른 상태인 ‘혼혼묵묵’의 뜻이다.
수운이란 물과 구름으로 천지 생명을 상징했다.
다시 피를 말리는 기도를 계속했다. 목숨을 걸고 정진했다.
그러나 응답은 없었다.<2권 본문 74쪽>

○ 시월 중순.
조금 여유를 찾은 경상은 흥해 매곡동 처가로 내려갔다.
이전에 경상은 매곡동에서 근 십 년을 살았었다.
여러 친구와 도인들을 만나 보았다. 그들이 경상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경상은 이들 앞에서 양천주에 대해서 강론했다.
“양천주란 내 몸에 모셔 있는 한울님의 뜻을 부모님의 뜻처럼 잘 받들어 모신다는 뜻입니다.
동학의 수행은 세상일에서 벗어난 오묘한 진리를 체득하려는 것이 아니요,
또한 신이한 기적을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내 몸에 모신 한울님의 마음과 내 마음을 일치시키도록 힘쓰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스승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닦는 이는 얻음이 없는 것 같지만 알참이 있고,
들어서 아는 이는 알찬 것 같지만 얻음이 없는 빈 것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동학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동학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동학을 하는 도인들입니다.
우리 모두 천주를 잘 받들어 한울님이 직접 말씀하신
‘오심즉여심’을 천착하도록 힘씁시다.”<3권 본문 121쪽>

○ 원평에서는 남쪽 지도자들이 주도했는데 그 중심에는 봉준이 있었다.
봉준은 보은의 동정을 예의 주시했다.
원평에 모인 사람들은 도인보다 농민이 더 많았다.
도주의 지시를 받는 호남 도인들은 거의 보은집회에 참석했다.
원평에는 김덕명을 비롯해
전봉준·김개남·손화중·최경선 등이 이끄는 포를 중심으로 집회가 진행되었다.
따라서 보은집회보다 분위기가 좀 더 강경했다.
그들은 재단을 높게 만들어 풍물을 울리고 소리판을 벌이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말깨나 하는 사람들이 단에 올라 조정과 수령의 부정을 늘어 놓았고
양반과 지주들의 횡포를 고발했다. 때로는 구호를 연창하기도 했다.
원평에서는 주문이나 경전 읽는 소리보다
세상을 한탄하고 벼슬아치를 질타하는 외침이 더 높았다.
그 외침에 무게를 실어줄 이론이 필요했다.<4권 본문 329쪽>

○ 김학진이 봉준을 감영으로 초청했다.
관민 상화책을 같이 상의하자는 의도였다.
봉준은 기다리던 일이라 기꺼이 응했다.
봉준은 삼베옷을 입고 큰 갓을 썼다.
감영군은 총과 칼로 무장하고 성 밖에서부터 좌우에 정렬해 봉준을 맞았다.
봉준은 조금도 거리낌없이 당당하게 들어갔다.
봉준은 선화당에서 김학진과 마주앉아 여러 현안을 두고 의견을 나누었다.
마침내 군현 단위로 집강소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이제 동학군은 면, 리를 넘어 읍 단위 고을의 행정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동학군이 휩쓴 지역은 관의 권위가 실추되어 동학군의 협조 없이는 치안조차 유지할 수 없었다.
봉준은 고을마다 집강소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집강소 내에 서기·성찰·집사·동몽의 직책을 두어 백성들이 스스로 나서서 서정을 펼 수 있게 했다.
집강이란 본래 동학 조직체인 육임의 하나로 시비에 밝은 도인이 도내 기강을 바로잡던 직책이다. 전주의 대도소에서 각 집강소를 지휘해 집강들은 비교적 공정하고 과감하게 구폐를 혁신해 나갔다. 집강소에서는 십사 개조 폐정개혁안에 근거해 착실하게 개혁을 실천했다.
남도에서 이 땅의 백성이 주인이 되는 가슴 뛰는 새 역사가 쓰이고 있었다.<5권 본문 255쪽>

○ “...밥은 대낮의 한울님인 산 사람의 밥이지 죽은 귀신의 밤참이 아니다.
여기 지금 만나는 산 사람이야말로 한울님처럼 공경해야 할 대상이다.
이제부터 밤의 저승과 죽음의 피안으로부터 사람을 해방시켜
대낮의 이승과 삶의 차안으로 시천주의 발걸음을 옮겨 놓을 때이다.
저 갑오년 산천을 피로 물들이며 하염없이 죽어간 도인들 또한 죽었다고 생각지 말라.
그들은 지금 우리 안에 살아 있는 것이다.
사람이 한울님을 모셨다 하나, 그 한울님은 바로 어제의 사람이었고,
그 사람은 바로 오늘의 한울님이다.
그러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한울님이 되게 하라.
그러므로 사람 모시기를 한울님처럼 하라.”
손병희와 손천민 그리고 김연국이 숙연하게 일어나 경건하게 시형에게 절을 올렸다.<6권 본문 296쪽>

■ 저자

김동련 _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상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문학석사.
경상대학교 대학원 철학박사 수료. 하곡인문도서관 관장.
경상대학교, 진주교육대학교, 방송통신대학교 출강. 도서출판 후아유북스 대표.
후아유 문예창작아카데미 대표.
저서: 장편소설 『우리가 사랑할 때』(밥북), 『천자문으로, 세상보기』(인간사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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