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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악산 거북이의 꿈

우울한섬 2022. 5. 30. 14:58

황악산 거북이의 꿈

■ 이 책은…

이 책은 ‘한국 근대사의 살아 있는 증인으로서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김성순(1929生) 선생이 평생에 걸쳐 써온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청년기에 맞이한 해방공간에서 격동의 시절을 견디고, 한국전쟁의 참혹한 비극을 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뿌리 깊은 농군의 길과, 민주화와 산업화의 역사 현장을 빠짐없이 편력해 온 발자취, 그리고 그 고비마다 끊임없이 고뇌하는 신앙인이자 철학적 사색과 역사적 모색을 쉬지 않은 지식인의 모습을 담아낸 기록은 한 개인의 자서전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빛나는 자산이 된다. 이 책은 인생의 완숙기에도 쉬지 않고 “사람이 곧 한울님”이라는 동학-천도교라는 새로운 길로 나아가며, 치열히 살아가기를 멈추지 않고 있어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 모두에게 삶의 귀감이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 분야 : 문학
  • 저자 : 김성순
  • 발행일 : 2022년 5월 25일
  • 가격 : 18,000원
  • 페이지 : 368쪽 (두께 18mm)
  • 제책 : 무선
  • 판형 : 152×225mm(신국판)
  • ISBN : 979-11-6629-104-3 (03810)

■ 출판사 서평

1929년생인 김성순 선생은 대구사범학교 3학년 때 해방을 맞이하여 초등학교 교사로 봉직하다가, 다시 경대 4학년에 복학하였다. 그러나 재학 중 단독정부 반대 유인물 배포 사건으로 구속되어 1년 6개월째 수감 생활을 하던 중에 6.25를 맞이한다. 천명 남짓한 수감자들이 차례로 끌려 나가 집단 학살을 당하는 와중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선생은 우여곡절 끝에 8년간의 군복무를 하고 만기제대한 후 포도농사를 지으며 자수성가의 길을 걸어간다.

그러나 역사와 시대로 향하는 그의 사명감과 우환의식은 잠시도 잠잔 적이 없었다. 1970년대 <씨알의 소리> 창간독자로서 역사의 전선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 놓기 시작하여 가톨릭농민회 회원으로서 함평고구마 사건, 오원춘 사건 진상규명 촉구 집회 등의 현장에서 강고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는 투쟁의 전면에 나서기보다 잡지나 신문 등의 독자로서 또는 보급자로서 메시지를 통한 운동을 위주로 하였다. 한국 포도농사의 산 증인으로서 ‘포도농사회’의 기관지격인 <포도>의 편집장을 1980년 이후 수십 년째 역임하고 있는 그는 이후 <한겨레신문> 창간 독자로서 김천 지국장 등을 역임하고 생명평화순례 등에 참여하며 활동의 폭을 넓혀 간다.

그러던 중 일본의 양심적인 역사학자 나카츠카 아키라와의 교류(2003~ )를 계기로 동학 역사 순례 현장에 참여하면서 활동의 폭을 넓혀 갔고, 2008년에 김지하 선생의 ‘생명사상’ 강연을 듣고, 경주 용담의 수운 선생 묘소를 탐방한 끝에 40년간 지녀오던 기독교(장로) 신앙을 천도교(동학)으로 바꾸게 된다.(2010년 천도교 입교) 그로부터 다시 10여 년을 지나는 동안 수운 선생의 처형 현장인 대구 장대 터에 비석을 세우고, 일본인 역사 탐방객들을 안내하는 등의 현장 참여 활동 외에도, 언제나 쉬지 않고 왕성한 독서를 하며 좋은 글들과 기사를 수집하고 편집하여 지인들에게 우편으로 발송하여 읽게 하거나 직접 집필한 글들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발표하여 왔다. 그중 주로 지난 10년간 집필한 기록들을 중심으로 이 책을 엮어내게 되었다.

이 책에는 여러 차례에 걸쳐 다양한 변주를 통해 발표한, 해방 전후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그의 인생 편력을 회고하는 글을 수록되었다. 이들은 대동소이하고 동어 반복적이면서도 조금씩의 차이를 보이는데, 중요한 것은 그 조금씩의 차이를 경과하면서도 그의 삶이 일관되었음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예컨대 그는 40년간 지녀온 기독교 신앙을 팔순 중반의 나이에 ‘천도교’ 신앙으로 바꾸었지만, 그가 중시하는 것은 ‘개종’을 통해 정파를 달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하늘과 사람과 만물을 공경하는 천도교의 이치, 사람 안에 신성(한울님)이 모셔져 있다는 태도는 기독교나 천도교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본다. 다만, 오늘의 기독교가 그 영성을 상실한 데 비하여 천도교는 굴곡의 역사 속에서 다시 그 영성을 점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믿음은 사실, 그의 바람이고, 의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그가 90세를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왕성하게 살아 움직이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이다.

이 책 제3부에는 그의 인생을 지켜보며, 모범으로 삼아온 후학들의 회고담들이 실려 있다. 각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혹은 각자가 직면한 역사의 현장에서 만났던 김성순 선생의 모습을 그려 보이고 있다. 그 모습들 또한 조금씩 변주된 것이면서도, 한결같은 선생의 모습이 그대로 묻어난다.

임낙경 목사는 김성순 선생의 인생을 “사나이 가는 길”이라고 논평하였다. “사나이 가는 길 앞에 웃음만이 있을소냐. 결심하고 가는 길 가로막을 폭풍은 어디 있으랴”라는 노랫말처럼, 그의 인생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으나, 그는 한순간도 좌절하거나 후퇴하지 않았다.
김경재 목사는 구순을 넘겨서도 왕성한 사상적 편력(동학-천도교)를 멈추지 않는 김성순 선생을 “한국에서 김용기 장로, 원경선 선생, 김성순 장로 세 분을 저는 ‘농사짓고, 복음 진리와 천도(天道)를 전파하는 3대 어르신’으로 늘 생각”한다고 증언한다.
1929년생으로 김성순 선생과 동갑인 나카즈카 아키라는 십여 년 째 ‘한일역사기행’을 이끌면서 연간 수십 명의 일본인을 데리고 동학역사기행을 진행하고 있는바, 2003년 이래 동행해 주는 김성순 선생에 대해 일본인 기행자들이 모두 ‘감명’을 받고 있다는 증언을 해 준다.
실상사 회주로서 생명평화순례를 이끈 도법 스님은 김성순 선생을 (1) 철두철미한 생활인 (2) 열혈 청년 학생 (3) 확고부동한 우국지사 (4) 영원한 청년구도자라는 네 부문으로 나누어 회고한다. 구순을 넘어선 그를 ‘청년 학생’ ‘청년구도자’로 명명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그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살아나가기를 계속하는 ‘살아 있는 사람’이다.
생태귀농학교 교정 이병철 선생은 “김성순 선생에 대한 보증서”를 써서, 그의 삶과 사상에 대한 헌사를 대신한다. 이는 일찍이 김성순 선생이 이병철 선생에 대한 보증서를 써 준 데 대한 보답이기도 하지만, “보증서”인 만큼 그(이병철)의 전 생애를 걸고서라도 신뢰하고 흠모할 수 있음을 짧지만 강렬한 어조로 증언해 준다.
정지창 전 영남대 교수는 “자연의 순리에 합치하여 살아온 선생님은 아직도 안경 없이 밤늦게까지 책을 읽고 젊은이 못지않게 총기도 좋아, 우리를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동학 얘기를 하신다. (중략) “멀리 구하지 말고 나를 닦으라.”라는 동학의 가르침에 따라 매일 황악산을 바라보며 마음을 닦고 기운을 바르게 하는 항보 선생님이 한 그루 큰 소나무처럼 청청하게 후학들을 이끌어 주시니 늘 든든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정초에 찾아뵙고 세배를 드릴 어른이 있다는 것은 후학들에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라고 회고한다.
이러한 ‘원로 후배’ 외에 40대 ‘소년 후배’들까지 김성순 선생에 대한 회고담은 계속된다. 그만큼 그의 삶의 자장이 여전히 폭넓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또한 2부 말미에는 그가 평생 써온 일기 중 일부 대목을 수록하였다. 매일매일 성찰하고 교류하고 소통하며 좀 더 나은 세상, 좀 더 밝은 미래를 추구해 나가는 그의 면목이 날것으로 드러난다.

이것은 그의 ‘첫 번째 문집’이지만, ‘마지막 문집’은 아닐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글에도 있듯이 김성순 선생은 ‘채현국 선생’과도 깊은 인연과 교류를 계속해 왔다. 이제 채현국 선생도 가시고, 하나의 시대가 격동하는 이 시기에, 김성순 선생은 한국 근현대사를 양심껏 살아가는 ‘아름다운, 오래된 청년’으로서 여전히 빛나는 역사의 등대가 되어 주고 있다.

■ 차례

간행사_ 항보 김성순 선생의 삶과 생각을 엮으며
머리글_ 김구 선생에서 코로나까지

제1부 ┃항보의 삶과 생각

Ⅰ. 거북이의 꿈
한 농민의 고백
농민도 사람이다!
봄바람 밤새 불더니
백대 서원 절 명상과 ‘참나’
정신과 물질의 개벽
한 가족의 역사
고3 학생과 80 노인의 대화
거북이의 꿈
아이야 어서 오너라 위로 날자 예, 정신개벽의 길
거북이 하늘을 날다
『천 년의 만남』에서 동심원(同心圓)의 세계로
60년 포도 농사 달인의 동학 이야기
구순의 동학 열정가, 김성순 선생과 이야기 나누다
Ⅱ. 동학 수행자의 여행
동학 한일 교류(1)
동학 한일 교류(2)
동학 한일 교류(3)
탈핵·상생, 처용의 노래
수운 선생의 부부 싸움
나는 아시아인이다
남쪽 별 둥글게 차고 북쪽 은하수 돌아온다
한국은 무엇을 세계에 자랑할 것인가?
열린 사람 열린 교회
회화나무 이야기
머리는 하늘에 발은 땅에
자랑스러운 스승님, 자랑스러운 후손
땅은 똥거름을 받아들여야 오곡이 풍성하고
멀리 구하지 말로 나를 닦으라
하느님은 모든 사람과 사물에 존재한다
중국인이 본 조선과 천도교
동학 사과의 맛을 아시나요?
작은, 그러나 큰 학습 운동으로

제2부 ┃자성록(일기)

Ⅰ. 2006년 자성록
Ⅱ. 2014년 자성록
Ⅲ. 2015년 자성록

제3부 ┃나와 항보

정농의 씨앗을 뿌린 사람 /임낙경
김성순 씨와 ‘한일 시민 동학 기행’ /나카즈카 아키라
존경하는 김성순 장로님 전상서(前上書) /김경재
청년 구도자 김성순 장로님 /도법
항보 김성순 선생의 보증서 /이병철
황악산의 큰 소나무, 항보 김성순 선생님 /정지창
뛰어난 ‘시상’과 ‘부지런함’, 이웃에 대한 ‘배려’가 넘치는 분! /배종렬
항보 선생과의 인연 /이길재
나의 삶의 스승/박택균
한 그루 큰 나무 /이수안
누군가에게 등을 내어 줄 수 있는 용기 /신채원
항보 김성순 선생님과의 만남 /임근수

항보(恒步) 김성순(金聖淳) 연보

 

■ 책 속으로

○ 2003년 봄 교보문고에서 구입한 책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일본과한국 조선의 역사』 마지막 부분에 “이웃의 불행 위에 내 행복을 확보하려고 해도 그것은 머지않아 나에게 돌아온다. 이것이 일본의 근현대사의 역사적 교훈이다”라는 말에 감동하여, 전화로 저자와 교류를 시작하고 그해 9월 한일 역사 세미나에 저자가 왔을 때 만났다. 저자 나카즈카아키라(中塚 明)는 나와 동갑인 1929년생으로, 한평생 청일전쟁과 동학농민혁명 연구에 집중하여 많은 저서를 남겼을 뿐 아니라 2006년 가을부터 여행사를 통하여 지난해까지 14차에 걸쳐 400명에 이르는 사람을 기행에 안내하고 몇 해 전 장서 일만수천 권을 전남도립도서관에 기증하였다. 대개 경복궁 영추문, 가흥, 보은, 전주, 정읍, 고창, 무장, 삼례, 대둔산, 우금치, 서울의 경로로 다니는데, 몇 차례 동행하다가 “동학사상의 뿌리는 대구·경북입니다.”라고 항의(?)하였더니, 2013년에는 김천·대구,2014년에는 경주·대구를 거쳐 남원으로 가게 되었고, 해월 선생이 유일하게 한글로 「내수도문」과 「내칙」을 쓰신 곳인 김천 구성면 용호동을내가 안내하고, 대구 종로초등학교 교정의 400년 된 회화나무(최제우나무) 밑에서 졸시를 낭독하기도 하였다. <본문 37~38쪽>

○ 나는 몇 해 전부터 혼자 보기 아까운 귀한 글을 모아서 수첩에 적어 수시로 읽곤 하였는데, 그 글들을 묶어서 ‘행복한 인문학 명상 자료’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복사하여 200부 정도를 민들레 씨앗처럼 우편으로 주변 친구들에게 날리고 있다. 최소한 나 자신의 정신 건강과 치매 예방에는 효과가 있으리라. 명상 자료 제6호에는 최민자 교수의 천부경 해설, 다산의 홀로 웃음『, 참전계경』, 해월 선생의 <강시>, <개벽운수>, 전택원 씨의 『마음에 이슬 하나』를 엮었는데 광주 고3의 회답은 다음과 같다. “… 이번에 보내 주신 인쇄물… 뜻깊은 말씀이 많네요. 천천히 음미하며 읽겠습니다.(하략) <본문 56쪽>

○ 전국 포도 농가의 자생 조직인 한국포도회는 1980년 여름 광주항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대로 창립총회도 열지 못하고 출발하여 지역 단위 작목반 중심으로 30여 년을 싸워 왔다. 한·칠레 FTA에 대한 반대운동으로 얻은 지원 사업으로 시설과 재배 기술 향상에 많은 변화를 이루었으나 물질 중심의 성장이 한계에 부딪치고, 생태 생명이 중시되는 성숙 단계에 적응하는 농업적 가치관의 확립이 요구되고 있다. 저마다 유기농업과 환경을 외치며 ‘신토불이(身土不二)’가 상표처럼 박스마다 표시되어 있으나, 내 몸과 농토가 둘이 아닐 뿐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가 너와 나 하나임을 마음속 깊이 깨달아야 하는 때가 아닌가 한다. <본문 139쪽>

○ 《개벽신문》 13호에 실린 ‘청수봉전의 유래’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뭉클’ 목이 메이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양녀 주씨의 증언에 “대신사 불철주야 청수를 모시고 구도에 전념하는데, 박씨 사모님께서 순간 화가 치밀면 청수상을 엎었는데, 청수 그릇이 데굴데굴 구르다가 언제나 반듯하게 세워졌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 허구한 날 도 닦는답시고 청수를 붙들고 있는 남편을 보다 못해 박씨 사모님은 이따금 분통을 터뜨린 모양이다. 부인의 앙칼진 목소리에 아이는 울고 허탈한 심정으로 부인을 바라보는 수운 선생의 바보 같은 얼굴을 상상해 본다. 청수 쏟아진 방과 온갖 푸념을 내뱉으며 소리 지르는 박씨 부인의 모습을 뒤로 하고, 수운 선생은 터덜터덜 걸어 나와 하릴없이 구미산을 올라갔을 것이다. <본문 150쪽>

○ 1949년 8월 나는 20세 젊은이로서 김구 선생의 ‘남북협상, 단독정부수립 반대운동’에 참여한 일로 구속되어 6·25를 대구형무소 미결감에서 맞이하였다.(국가보안법 위반. 3498번) 3,700여 명이 재판도 없이 경산 코발트 광산 등에서 학살되는 와중에서 생존하여 가시밭길 한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선생님 사진을 머리맡에 모시고「 나의 소원」을 되새겼다. 85-20=65. 65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다시 선생님 면전에 섰다. 2007년 6월 2일, 단성사 근처에서 열린 해월 선생 순도 추모식에 참석한 뒤, 이런저런 인연으로 동학을 공부하는 만학도가 되었다. 2009년 2월 25일. 경주 용담수도원과 특히 묘소를 찾았을 때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 나도 알 수 없는 마음의 평안을 느꼈다. 가까운 현곡(見谷)초등학교는 해방 직전 내가 졸업한 모교여서 그날 학교를 찾아 옛 학적부를 열람하고 소위 창씨개명 한 일본식 이름을 수정하였다. <본문 170쪽>

○ 경북대, 영남대 동학 세미나와 한울연대 수련 등에 참여하면서 대구동학연구회와 동학공부방 등을 통해 활발히 움직이고, ‘동학의 뿌리는 대구·경북이다’ 다짐하며 이 지역의 뿌리 깊은 보수·진보의 대립과 남남갈등을 근본적으로 풀어 보고자 꿈꾸고 있다. 중앙의 높은 자리에서 보지 말고 현지에 내려와서 실상을 살펴보길 바라며 ‘무신론자라도 양심의 법에 따라 살면 된다’라고 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언이 많은 공감을 얻는 시대임을 명심해야 한다. 자기 허물을 벗지 못하는 뱀은 성장할 수 없다 하였다. 대구 지형이 큰 거북이 바다에 뛰어드는 모습이며 지하철 1·2호선이 교차하는 반월당 거리를 수운광장으로 하자는 여론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본문 213쪽>

■ 저자

김성순(金聖淳) _ 1929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다.
1949년 김구 선생의 단독 정부 수립 반대 운동에 가담하여 구속, 6·25를 대구형무소 미결감에서 맞이하였고, 가까스로 생존, 1951년 출감하였다.
1958년 30세에 병역을 마치고, 그해 김정옥 여사와 결혼하였다.
1960년 김천 직지천 하천부지에서 포도 농사를 시작하였다.
1976년 크리스천아카데미 농촌9기를 수료하고, 가톨릭농민회에 참여, 함평고구마사건, 오원춘사건 등 농민운동에 가담하였다.
1980년 한국포도회 창립, 한살림운동, 정농회에도 관여하였다.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시 김천지국장을 맡기도 하였다.
2005년 도법 스님과의 만남 이후 지금까지 생명평화운동을 함께하고 있다.
2007년 동학을 만나 2010년 천도교에 입교하였고, 일본의 사학자 나카즈카 아키라(中塚明)와 교류하며 동학기행을 함께했다.
번역서 『일본의 조선침략사연구의 선구자 야마베 겐타로(山辺健太郎)와 현대』(2016)와 시집 『거북이 마침내 하늘을 날다』(2022)가 있다.

■ 추천사

○ 선생께서는 마주 보이는 황악산을 가리키면서 소설 『큰 바위 얼굴』을 이야기하셨다. 당신도 그렇게 저 황악산을 닮아 갔으면 하시는구나 싶었다. 그런 선생의 모습에서 이미 선생은 저 백두대간의 한 줄기로 우뚝한 황악산이 되셨다고 느꼈다. 해방 전후 혼돈의 공간과 한국전쟁 시기의 참혹한 시련을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인간이란 존재의 의미를 잃지 않고 밝음을 향해 평생을 걸어오신 선생이 바로 저 황악산 같은 분이라고. - 이병철 시인, 생태귀농학교 교장

○ 2005년 김천 지역 생명평화탁발순례 할 때 처음 뵈었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생명평화에 관한 크고 작은 모임의 자리에서 함께했다. 참으로 열정적이고 헌신적이고 탐구적이시다. 그 과정에서 내 뇌리에 새겨진 인상은 참으로 강렬했다. 몇 가지를 옮겨 보면, ‘열혈 청년 학생·철두철미한 생활인·확고부동한 우국지사·영원한 청년 구도자’ 등 언제나 한결같이 새로운 세상, 좋은 세상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옮기신다. - 도법 실상사 회주

○ 자연의 순리에 합치하여 살아온 선생님은 아직도 안경 없이 밤늦게까지 책을 읽고 젊은이 못지않게 총기도 좋아, 우리를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동학 얘기를 하신다. 한시는 소리 내어 읽어야만 그 운율이 주는 감흥을 맛볼 수 있다면서 수운의 한시를 줄줄 외우며 그 뜻을 새겨 들려주시는데, 특히 선생님의 <화결시(和訣詩)>해석은 일품이다. 수운이 득도한 후의 환희를 노래한 이 시를 읽으면 베토벤의 교향곡 9번에서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지는 듯, 복받치는 감흥을 느낀다는 선생님의 안목과 감성에 우리는 고개를 숙일 뿐이다. - 정지창 문학평론가, 전 영남대 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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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의미 문명 Ⅰ』 2022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선정